CBD는 어떻게 뇌전증 발작을멈추는가?
- SH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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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otte Figi의 기적적인 이야기에서 FDA 승인 신약 Epidiolex까지 — 대마초 성분이 신경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여정
하루 300번 발작, 그리고 대마초
2006년 콜로라도에서 태어난 Charlotte Figi는 생후 3개월부터 발작을 시작했다. 진단명은 Dravet 증후군 — 희귀하고 치명적인 유전성 뇌전증이었다. 다섯 살이 되었을 때 Charlotte는 하루에 최대 300번의 강직-간대 발작(grand mal seizure)을 경험하고 있었다. 다섯 가지 항경련제를 복합 투여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의사들은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때 Charlotte의 부모 Matt와 Paige Figi는 인터넷에서 한 영상을 발견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비슷한 증상의 소년이 대마초 오일을 복용한 뒤 발작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콜로라도의 의료용 대마 재배업자 Stanley 형제들에게 연락했다.
CHARLOTTE'S WEB — 이름의 유래
Stanley 형제들은 THC 함량이 극히 낮고 CBD 함량이 높은 특수 대마초 품종을 개발해 Charlotte에게 제공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첫 주에 발작이 거의 사라졌다. 한 달 후, Charlotte는 일주일에 2~3번으로 발작이 줄어들었다. 그녀는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고, 밥을 먹기 시작했으며, 자전거를 탔다.
이 대마초 품종은 Charlotte의 이름을 딴 "Charlotte's Web"으로 불리게 되었다. 2013년 CNN의 Sanjay Gupta 박사가 다큐멘터리 "Weed"에서 이 이야기를 다루면서 미국 전역에 알려졌다. 수천 명의 뇌전증 환자 가족들이 콜로라도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Cannabis Refugees"의 탄생이었다.
CBD는 뇌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
CBD(Cannabidiol)의 작용 기전은 THC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THC가 CB1 수용체에 직접 결합해 '환각' 효과를 내는 것과 달리, CBD는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경로를 통해 신경계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뇌전증 억제와 관련된 핵심 기전은 다음과 같다.
GPR55 길항
GPR55 수용체를 차단하여 뉴런의 과도한 흥분성을 억제. 이 수용체는 Dravet 증후군 환자에서 과활성화되어 있음.
TRP 채널 조절
TRPV1, TRPA1 채널에 작용해 신경전달물질 방출을 조절. 칼슘 이온 유입을 통한 발작 역치 상승.
GABAergic 강화
GABA-A 수용체의 억제성 전달을 강화하고 adenosine 재흡수를 차단해 항경련 효과를 증폭.
나트륨 채널 차단
전압 의존성 Na⁺ 채널(Nav1.1, Nav1.6)의 기능을 안정화. Dravet 증후군은 SCN1A 유전자 변이로 인한 Nav1.1 기능상실이 근본 원인.
"CBD의 항경련 효과는 단일 수용체가 아닌 다중 경로의 협력적 억제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기존 항경련제가 실패한 환자들에게도 효과를 보이는 이유일 수 있다."
— Devinsky et al., 2018, NEJM (GW Research 임상시험 결과)
특히 주목할 점은 CBD가 Dravet 증후군의 핵심 병태생리를 직접 겨냥한다는 것이다. Dravet 증후군의 80%는 SCN1A 유전자 변이로 인한 억제성 뉴런(GABAergic interneuron)의 기능 저하가 원인이다. CBD는 이 억제 시스템을 여러 경로로 동시에 강화한다. 단순한 증상 억제가 아닌 병태생리적 기전에 작용한다는 점에서, 신경과학계는 CBD를 기존 항경련제와 다른 범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GW Pharmaceuticals와 Epidiolex의 탄생
Charlotte의 이야기가 미디어를 통해 퍼지던 2013년, 영국의 한 제약회사는 이미 CBD를 약품으로 개발하는 작업을 수년째 진행하고 있었다. London School of Pharmacy 출신의 Geoffrey Guy 박사가 1998년 설립한 GW Pharmaceuticals였다.
GW는 세계 최초로 대마초 유래 의약품 Sativex(nabilone + CBD, 다발성 경화증 통증 치료제)를 유럽에서 허가받은 회사였다. 그들은 이미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수준의 대마초 재배 및 추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이것이 FDA 승인을 향한 결정적 우위였다.
1998
Geoffrey Guy, GW Pharmaceuticals 설립. 영국 정부 최초로 의료용 대마초 재배 허가 취득.
2013
Charlotte Figi 사례 CNN 방영. GW, Epidiolex(순수 CBD) 1상/2상 임상시험 개시. FDA, Orphan Drug 지정.
2016
3상 무작위 이중맹검 시험 시작 (Dravet 증후군, Lennox-Gastaut 증후군). 19개국 24개 센터 참여.
2018년 6월
FDA, Epidiolex 승인. 역사상 최초의 대마초 유래 FDA 승인 의약품. Dravet 증후군 및 Lennox-Gastaut 증후군, 2세 이상.
2020
Tuberous Sclerosis Complex(TSC) 적응증 추가 승인. Charlotte Figi 2020년 4월 코로나19 합병증으로 타계, 향년 13세.
2021년 2월
Jazz Pharmaceuticals, GW Pharmaceuticals 인수. 인수금액 $7.2B(약 9조 원). 희귀신경질환 포트폴리오 강화.
숫자로 본 Epidiolex의 효능
2018년 NEJM에 발표된 Dravet 증후군 3상 시험(Devinsky et al.)은 Epidiolex의 과학적 근거의 핵심이다. 120명의 소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이 무작위 이중맹검 위약대조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39%
Epidiolex군
발작 빈도 감소(중앙값)
13%
위약군
발작 빈도 감소(중앙값)
5%
Epidiolex군
발작 완전 소실 비율
특히 기존 항경련제에 반응하지 않던 환자들(treatment-resistant epilepsy)에서도 의미 있는 효과가 관찰되었다. Lennox-Gastaut 증후군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2개 3상 시험(Thiele et al., Lancet 2018)에서도 drop seizure가 각각 44%, 42% 감소해 위약군(22%, 17%)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보였다. [p<0.001]
"이 데이터는 단순히 하나의 약이 효과적이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수십 년간 의학계가 외면해온 대마초 화합물이 엄격한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검증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 FDA 승인 심사관 논평, 2018
안전성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간독성이었다. Epidiolex군에서 간 효소(ALT) 상승이 약 16%에서 관찰되었으며, 특히 Valproate와 병용 시 위험이 증가했다. 이는 현재 처방 시 모니터링 권고 사항의 근거가 된다. 임상에서 가장 흔한 부작용은 졸음, 식욕 감소, 설사였으며, 대부분 용량 조절로 관리 가능했다.
Jazz가 $7.2B에 GW를 산 이유
인수 개요 — 2021년 2월 완료
Jazz Pharmaceuticals→GW Pharmaceuticals
$7.2B
주당 $220 (현금+주식)
아일랜드 더블린에 본사를 둔 Jazz Pharmaceuticals는 수면 장애(Xyrem/oxybate)와 혈액암 치료제로 알려진 중형 제약사였다. Jazz의 CEO Giovanna Abbate는 이 인수의 전략적 논리를 "희귀 신경질환에서 세계적 리더십 확보"로 설명했다.
핵심은 Epidiolex의 매출 성장 궤도였다. 2018년 승인 후 2020년 기준 연 매출 약 $510M, 그리고 TSC 추가 적응증과 함께 Peak Sales $1.5B 이상이 예상되었다. 또한 GW의 파이프라인에는 cannabinoid 기반 신약 후보물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 인수는 단순한 M&A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당시 대마초 산업은 미국에서 주(州)별로 합법화가 확산되고 있었지만, 연방 차원에서는 여전히 Schedule I 물질로 분류되어 있었다. Epidiolex는 DEA에 의해 Schedule V(가장 낮은 규제 등급)로 재분류된 유일한 대마초 유래 화합물이었다.
Jazz-GW 딜은 이후 제약 업계에 중요한 신호를 보냈다: 식물 유래, 특히 cannabinoid 기반 의약품도 충분한 임상 근거가 있으면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다. 이는 수십 개의 바이오텍이 cannabinoid 신약 개발에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Charlotte Figi가 바꾼 것들
Charlotte Figi는 2020년 4월, 코로나19 관련 합병증으로 1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가 만들어낸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13년 CNN 다큐멘터리 방영 후 미국에서 의료용 대마초 합법화를 추진하는 주가 급격히 늘어났다. Charlotte의 부모는 Realm of Caring Foundation을 설립해 cannabinoid 의학 연구와 환자 접근성 향상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아이의 이야기가 수천 명의 Dravet 증후군, LGS, TSC 환자들에게 최초의 FDA 승인 치료 옵션을 가져다 주었다.
현재 연구 동향
CDKL5 결핍 장애 (CDD): Jazz/GW는 Epidiolex의 CDD 적응증 확대를 위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CDKL5는 X 염색체 연관 유전자로, 변이 시 심한 조기발병 뇌전증을 유발한다.
다른 cannabinoid들: CBDV(cannabidivarin), THCV 등 CBD 외 cannabinoid 화합물의 항경련 효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GW의 연구소에는 100종 이상의 cannabinoid 화합물이 등록되어 있다.
바이오마커 연구: 어떤 환자군이 CBD에 반응할 가능성이 높은지 예측하는 유전체, 대사체 기반 바이오마커 발굴 연구가 진행 중이다. SCN1A 변이의 종류가 반응 예측에 활용될 수 있다는 초기 데이터가 존재한다.
"의학의 역사는 때로 교과서가 아닌 한 가족의 절박한 선택에서 새 장이 열리기도 한다. Charlotte는 과학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대마초 연구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임상 증례가 되었다."
— 저자 정리
CBD는 마법의 약이 아니다. 모든 뇌전증 환자에게 효과적이지 않으며, 간독성을 포함한 부작용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 치료에 실패한 희귀 뇌전증 환자들에게, Epidiolex는 과학이 검증한 실제 선택지다. 그리고 그 선택지의 시작에는 콜로라도의 한 소녀가 있었다.
